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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작가 을지로 프로젝트 전시 – 골든에이지, 을지로
- 2019.07.18
조회 245
제목: 골든에이지, 을지로_김지희 개인전(Kim Jihee)(세운, 예술가의 실험실)
일시: 2019. 7. 4 – 25

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장사동 112-15 스페이스바(세운 메이커스 큐브 서 201)
주최: 스페이스바, 10AAA
전화: 070-8822-2701
운영시간: 매일 11: 00 – 5: 00




골든에이지, 을지로
글| 김지희
 
을지로는 다만 오래된 삶의 현장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한가지 일을 파고든 장인들의 성실한 노역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월의 흔적을 만들어 온 곳. 미대를 다니던 내겐 온갖 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스틸이나 아크릴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볕이 뜨거웠던 날 온종일 금속 집 문을 두드렸던 적이 있었다. 조소과 친구들은 난해한 문제에 봉착하면 탱크도 만든다는 을지로 박사님을 만나러 간다 하곤 했다. 
지난 겨울, 오랜만에 을지로를 찾았다. 작업을 위해 배회하던 을지로에 크고 작은 공간들이 조심스럽게 들어서기 시작한 이후, 한창 공간들이 입소문을 탈 무렵이었다. 후배가 알려 준 장소를 향해 여러 번 지도를 뒤적이다 찾은 곳에는 간판 조차 없는 작은 파스타집이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길 꺼려하는 듯 옛날 간판이 그대로 걸려있는 외관에 당황하며, 시간에 묵은 계단위에 늘어 선 사람들 뒤로 어색하게 줄을 섰다. 
한참 뒤 앉은 공간에는 모던한 인테리어 대신 새 것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궁핍한 사물들이 시선을 채웠다. 이내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물들의 수런거림에 오랜 기억들이 기지개를 켰다. 자리를 옮긴 곳 역시 흔한 간판 하나 없는 불친절한 와인바였고,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는 5층 높이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 비밀스러운 장소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어쩌면 숨겨진 공간을 찾아가며 지루한 일상을 환기시킬 만큼의 소박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닐까. 유행처럼 과거가 소비되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전시로 연결시켜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날 이후였다. 
그 겨울부터 나는 틈만 나면 소셜미디어에서 오르내리는 을지로의 카페와 레스토랑, 바를 어정거리며 수개월의 시간을 소요했다. 여러 차례 을지로 땅을 밟는 동안 매일 한 줌의 낱말과 한 줌의 오랜 공기를 채집해 드로잉북에 옮기고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시간을 그리워하며 그리는 것, 예술의 본령이 결국 그리움이라고 믿어왔듯 시간의 그리움이 깃든 사물을 그려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 가게의 투박한 조명 갓은 화려한 꽃무늬였다. 화려한 무늬 사이를 비집고 철 지난 시절들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던 날은 스물 두 살 여름이었다. 익숙했던 할머니 품을 찾아 다 커서도 할머니 방 이불속을 파고들어야만 잠이 잘 오곤 했을 만큼 할머니와의 사이는 각별했다. 할머니 이불에도 꼭 그런 화려한 꽃무늬가 있었다. 어릴 적 종종 할머니는 자기 전 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동네 아재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들으면 졸음이 쏟아지곤 했다. 여전히 숨 가까이에서 나를 안아주던 이불의 따뜻한 품과 할머니의 체취가 잊혀 지지 않는다.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조금이라도 화려해 보이려는 서글픈 욕망의 투영이었는지 그 시절의 물건들은 참으로 화려한 패턴이 많았다. 
한해 한해 목적을 잃고 줄어들던 할머님의 유품은 이제 작은 화장대 하나가 남았다. 젊은 날부터 수도 없이 들여다보셨을 거울을 전시공간으로 들고 가야겠다고 먼지를 닦았다. 이내 가슴에 내려앉는 눅진한 덩어리에 저릿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 따뜻했던 숨결이 소멸하였음이 새삼 손끝으로 전해졌다. 할머니의 작은 화장대처럼 지난 시간이 남긴 것이라고는 몇 가지 사물들 뿐임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다행이 그 사물들 덕분에 다시 그 시절의 온기를 더듬을 수 있었다. 나의 모체가 된 시간들을 을지로의 오랜 사물과 함께 차근차근 복원해 나가는 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과 조우했고, 사물이 열어 준 추억의 문으로 들어가 잠시 쉬곤 했다. 너무 오래되지도 않은 풍물들은 어렸을 때 함께 하던 것들이라 자연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일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오랜 친구를 노포가 가득한 을지로 골목으로 불러내기도 했다. 해가 길었던 날 한낮의 열기가 긴 이야기 속에 사위고, 맥주잔 위에 펼쳐진 휘황한 만국기가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동안 웃음 뒤에 놓인 행복감을 발견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친구와 해묵은 시절을 주고받던 그 밤은 잔잔한 기쁨을 주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가장 행복감을 크게 느끼는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과 한끼 식사를 할 때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평범한 시절의 기쁜 일상은 자극적인 기억에 밀려 금세 사그라드는 것 일까. 
어떠한 빛나는 순간보다 사실은 더 평안했을 이 저녁이 곧 기억에서 스러져버린 폐허가 된다면, 나는 그 기억으로 들어가 어떠한 사물을 꺼내어 나의 세계에 수집하게 될까.
 
을지로의 새로운 공간들은 비로소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람들은 투박한 손길의 흔적과 불편함과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를 소비한다. 가게마다 줄 지은 손님들이 증명하듯 익숙한 낡음은 그렇게 재조명 받는다. 
이 전성기는 화려하기보다 따뜻하다. 시간에 풍화되고 남은 궁색한 사물들이지만 날긋하게 닳아버린 표면에서 어렴풋한 나의 시절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가장 포근한 잠을 잘 수 있었던 할머니 방 이불 속과 호랑이 이야기, 꽃무늬 스테인드 글라스 불빛 아래의 가족 식사, 자개장농에서 새어 나오는 시간의 냄새, 최초의 사회를 겪기 이전 투명한 유희를 주던 크고 작은 경험들. 적어도 나의 골든 에이지는 그렇다. 
그리고 묻고 싶다. 삶이라는 여정 중 당신의 기억 속 골든에이지에서 꺼내 오고 싶은 따뜻한 사물에 관하여 말이다. 오늘이 오랜 과거가 된다면, 특별하지 않은 오늘을 작은 별처럼 기억에서 명멸하게 해줄 무언가가 있다면. 
주머니 속의 손난로처럼, 그 사물의 온기가 때때로 차가워지는 마음을 덥혀 줄 수 있는 피안이었으면 한다. 소중한 안식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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