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스크랩하기
인쇄하기
즐겨찾기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고려 수도 개경 정도 1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admin - 2019.09.03
조회 77
‘고려 수도 개경 정도 1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
▶ 고려 수도 개성의 지닌 통합과 평화의 공존이라는 역사문화적 가치 조명
▶ ‘중세수도 고려 개경이 남긴 역사적 가치’를 주제로 총 7개의 패널이 참가
▶ 향후 기대되는 남북문화교류사업 추진을 위한 학술연구의 축적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성환)에서는 고려가 919년 개경으로 수도를 정한 지 1,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9월 6일(금)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되는 학술회의는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한국중세사학회·인천문화재단 3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행사이다.

고려 수도 개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북한의 ‘개성역사지구’에 포함되어 있다. 개성은 역사적으로 고대 신라의 낡은 질서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곳이자, 중세라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 장소이다. 또한 개경(개성)은 개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고려 문화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였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합해 평화의 공존이라는 역사 모델을 제시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남북간에 첨예한 이념의 갈등을 넘어 협력과 포용의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고려시대 개경에 대한 역사문화적인 가치는 새롭게 이해되고 주목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학술회의의 세부주제는 ‘중세수도 고려 개경이 남긴 역사적 가치’이며 총 7명의 패널이 참가한다. 기조발표로 안병우(한신대 교수)의 <고려의 수도 개경의 역사적 위상>을 시작으로, 개성 천도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살피는 박종진의 발표, 수도 개성의 영역과 100여년에 걸친 도시 공간의 변천상을 역사적으로 추적한 신안식, 전경숙의 발표, 그리고 고려왕조의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개성에서 이루어진 불교의례와 불교사원의 존재에 대해 규명한 한기문의 발표, 고려의 제2수도로서 강화도 고려왕궁의 공간과 역사성을 살핀 이희인의 발표, 마지막으로 개성역사문화지구의 세계유산으로의 가치와 보존 및 활용방향을 위해 남북문화교류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하는 홍영의의 발표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학술회의는 향후 기대되는 남북문화교류사업 추진을 위한 학술연구의 축적임과 동시에 ‘개성역사유적지구 남북공동 보존 계획’ 추진을 위한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우는데 적극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포스터 및 개성시가 전경 사진 별첨
■ 사업 개요
○ 세부주제 : 중세 수도 고려 개경이 남긴 역사적 가치
○ 일 시 : 2019년 9월 6일(금) 10:00~18:00
○ 장 소 : 인천문화예술회관 강당
(인천 남동구 예술로 149, 전화 (032)427-8401)
○ 공동주최 : 경기도박물관, 인천문화재단, 한국중세사학회
○ 참 가 자 : 패널 총 16명(발표자 7, 토론 6, 사회 2, 토론좌장 1) 및 일반
○ 세부 일정
사업 개요가 일시, 발표 및 내용, 발표 / 토론자로 구성된 표입니다.
일 시 발 표 및 내 용 발 표 / 토 론 자
10:00~10:30 현장등록
사회 : 김락기(인천문화재단)
10:30~11:00 개회사 / 환영사 / 기념촬영 -개회사 한국중세학회 회장
-환영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환영사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11:00~11:30 기조강연
고려의 수도 개경의 역사적 위상
안병우(한신대)
11:30~12:00 1주제 고려 건국의 기반과 개경 천도의 배경 박종진(숙명여대)
12:00~13:30 중식
13:30~14:00 2주제 고려 개성의 축성과 도시 영역의 변화 신안식(건국대)
14:00~14:30 3주제 고려 수도 개경의 도시 공간 구성과 변화 전경숙(숙명여대)
14:30~14:40 휴식
14:40~15:10 4주제 고려개경내 사찰창건과 경제 사회적 기능 한기문(경북대)
15:10~15:40 5주제 고려江都의 도성 건설과 공간구성 변화 이희인(인천시립박물관)
15:40~16:10 6주제 고려 수도 개경, 세계유산으로의 가치 홍영의(국민대)
16:10~16:30 장내정리, 휴식
16:30~18:00 종합토론 좌장 서성호(전 국립중앙박물관)
18:00 폐회 및 저녁
■ 발표논문 요약
제 1발표 : 고려 건국의 기반과 개경 천도의 배경(박종진)
왕건의 선조들은 신라후기에 송악 일대에 정착하여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이 궁예에게 귀부하면서 왕건 또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는데, 당시 왕륭의 세력권은 송악군 일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왕륭이 궁예에 귀부한 후 왕건은 궁예의 신임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고려 건국 당시 왕건의 지역적 기반의 핵심은 송악군과 그 주변의 개성군(정주 포함)이었고, 나주 역시 중요한 지역 기반이었다. 또 왕건은 이외에도 태봉의 수도인 철원을 포함하여 전국에 어느 정도의 지역적 기반이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 건국 당시 왕건의 세력은 궁예 세력을 압도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건국 당시 왕건의 기반을 해상세력으로 단정할 수 없다.
태조는 건국 직후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도읍을 옮겼다. 개경으로 천도한 이유는 개경이 왕건세력의 근거지였고 궁예 시절 한때 수도였기 때문에 그때 만들어진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려 태조가 송악으로 천도한 것은 그곳이 풍수적으로 최고의 명당이어서가 아니었다. 풍수지리는 개경 천도의 배경이 아니라 천도 이후 수도 개경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강조되었다. 개경 천도 후 고려의 영토가 확대되면서 수도 개경은 대체로 고려 국토의 중심지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전 왕조 때 보다 국가운영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제 2발표 : 고려 개경의 축성과 도시 영역의 변화(신안식)
이 글은 고려 국도 개경의 지리적 범주와 성곽 축조로 인한 도시 영역의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개경의 지리적 범주는 태조 2년 개경 정도를 단행하면서 설치된 ‘개주(開州)’의 지리적 범주와 연결된다. 개경은 전체적으로 ‘도내(都內)와 교(郊)’로 양분되었고, 그 구분은 현종 20년 나성이 건설됨으로써 보다 명확해졌다.
개경의 성곽은 정도이후 궁성과 황성의 체제로 운영되었고, 이는 궁궐 및 행정 시설 영역이다. 나성은 현종 즉위년에 축성 논의가 있은 이후 현종 원년과 9년의 거란 침략으로 공사가 늦춰지다가, 현종 11년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활발하게 추진되다가 현종 20년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나성의 완성은 지금까지 모호했던 도성의 지역적 구분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개경 성곽 체제의 완성은 ‘도내 – 교 – 경기’로 이어지는 국도 체제의 완성이었다.

제3발표 : 고려 수도 개경의 도시 공간 구성과 변화(전경숙)
919년 태조가 송악을 개주로 삼으면서 수도로서의 역사를 시작한 개경은 1029년 나성의 완성으로 수도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즉 정도 이후 100년의 기간을 거쳐 수도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수도의 도시 경관은 통치 이념, 사회 내외의 변화, 국가 간의 관계 등에 따라 변화를 수반한다. 이 글은 1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정비되어간 수도 개경의 도시 건설과정을 정리하고 그를 통해 고려 수도의 운영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더불어 개경의 도시 공간에 변화 배경과 양상을 검토하여 고려 수도로서의 개경의 전반적인 공간 구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4발표 : 고려전기 개경 사원의 성립과 기능(한기문)
고려전기 개경은 고려의 수도로서 국왕의 권위와 권력이 집중된 곳이었다. 개경 정도시에 성립된 사원과 역대 국왕에 의해 창사된 사원은 국왕의 불교적 권위가 가시적으로 재생되는 정기적 불교의례의 장소였다.
현종대 이후에는 상원 연등회시 봉은사 태조진전 행향과 중동 팔관회 때 법왕사 행향 등의 의례를 통해 국왕의 권위를 매년 갱신‧과시하였다. 내원당에 불아, 불골 성물을 첨경하는 의례, 외제석원과 흥국사에서의 국왕탄절도량, 내전에서의 보살계 수계, 정전 회경전에서의 봄, 가을 장경도량, 궁성 구정에서 출발하여 개경 가구를 도는 경행, 회경전에서의 3년 1회 백고좌인왕도량과 구정 반승 등 정기불교의례를 통해 국왕의 불교적 권위를 높였다.

제5발표 : 고려 강도江都의 건설과 공간구성(이희인)
개경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도성 관념이 적용되어 건설되었고 조선의 한양 건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한반도 도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강도는 개경을 공식적으로 대체한 도읍으로 개경을 모델로 건설되어 고려시대 도읍의 공간과 역사성을 파악하는데 있어 의미가 크다. 그러나 자료의 한계로 오늘날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도읍의 건설과정과 유적현황을 정리하고 고고·지리·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강도의 공간구조를 살펴본다. 아울러 향후 조사연구에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을 논의하고자 한다.

제6발표 : 고려와 조선의 수도 개경(성), 세계문화 유산으로의 가치 (홍영의)
-‘개성역사유적지구’의 보존과 활용, 활성화를 위한 제언-

이 글은 고려 수도 개경 정도 1,100주년을 맞아 앞서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개성역사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과정을 정리하고, 12개의 개별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의 권고사항인 보존·관리에 관한 내용을 통하여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으로의 가치와 이를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제안은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대한 학술적 토대를 마련하고 남북의 공동 협력을 통해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세계유산으로의 관광 활성화를 위함이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지난 2013년 6월 23일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개최된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개성의 역사적 기념물 및 유적(HistoricMonuments and Sites in Kaesong)‘이란 명칭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등재된 유산은 모두 12개의 개별유산이 모여져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개성 성곽, 개성 남대문, 만월대, 개성 첨성대,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표충비, 왕건릉, 7릉군, 명릉, 공민왕릉이다.
이러한 개성역사유적지구’의 보존과 활용, 활성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업은 개성지역의 유적과 유물의 현황을 공개하고, 이 일대의 문화재에 대한 전수조사(全數調査)를 통해 지정현황 및 지정표석을 비롯한 지정문화재 주변경관에 대한 개선사업을 이루어져야 한다. 이외에도 개성 내 고려 왕릉 발굴조사 및 유적 답사, 수창궁 등 고려 왕궁 터 발굴조사, 나성 등 고려 성곽 터 공동 발굴조사, 흥왕사 등 고려시대 사찰에 대한 조사 및 답사 등 다양한 형태의 사업제안도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향후 ‘개성역사유적지구 남북공동 보존 계획’ 수립을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하는 부분이다. 이는 관련 남북공동 학술대회와 전문가회의를 개최하여 상호 의견 교환과 논의에 대한 공론화를 거쳐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개성역사유적지구 보존 남북공동위원회’의 구성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을 실행하기 위한 기구인 ‘개성역사유적지구 남북공동연구 지원센터’도 개성공단내에 설립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개성역사유적지구 남북공동연구 지원센터’에서는 개성지역 문화재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확보된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보수·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남북간의 공동연구를 추진하여 관련 문화재에 대한 보다 발전된 연구성과를 축적해 개성지역 문화재 보존에 활용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경험은 또한 ‘남북DMZ역사유적 공동위원회’ 설립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제 개성 주변의 무너진 탑과 폐허로 변한 사찰,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왕릉들, 언제 변용했는지 모르는 원형을 잃은 건축물들, 지금 남아있는 자료 속에 고스란히 복원을 기다리는 개성의 역사성과 위용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일제(日帝)의 야만성 때문에 이산의 아픔을 가진 현화사 석등과 남계원 탑, 경천사 13층탑처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리고 사라졌다가 100년 만에 소재가 파악된 연복사중창비(서울 용산 철도회관 앞 화단 위치)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이러한 협력을 바탕으로 그 옛날 세계인이 고려를 찾아 고려인(Korean)과 개성 사람처럼 개성의 유적을 두루 누빌 수 있는 날을 고대해본다.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공공누리 저작물 제4유형에 해당됩니다.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에 해당하는 콘텐츠입니다.
댓글 [0]
댓글달기
댓글을 입력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이전 다음 보도자료

콘텐츠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