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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리의 역사와 경기도기록원 건립
admin - 2020.06.10
조회 227
기록관리의 역사와 경기도기록원 건립
2020.06.07
기록은 한 사회가 남긴 경험이나 지식에 관한 유형의 증거라고 합니다. 일상에서의 기록은 주변 곳곳에 널려져 있으며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록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상 위 달력에 적어놓은 일정도 기록이고 회의 내용을 공책에 적는 것도 기록입니다. 세계기록관리기관 평의회는 기록을 “법적 책무를 이행하거나 업무를 처리할 때, 개인 혹은 기관(공적 혹은 사적)에 의해 생성·접수·유지·이용되는 문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록이 공적 행위의 과정과 결과로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행위가 반영된 결과물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기록관리의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국·고려시대부터 사관이 존재하여 기록을 남겼고, 중요 국가기록들을 분산 보존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전담기관이 설립되어 다양한 기록물들이 생성됩니다. 춘추관은 역사를 편찬하고 국가기록물을 보존하는 곳이었는데, 3정승을 비롯하여 판서 2명, 참판 2명과 당상관으로 구성된 수찬관 7명 등 50여 명의 전임사관들이 소속되었습니다. 여기서 편찬된 왕조실록은 25대 철종까지 472년간의 기록으로서, 총 1,893권 888책에 달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관청별 업무일지도 매우 자세하게 작성되었는데, 일기 혹은 등록이란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승정원일기·일성록·비변사등록 등이 그 사례입니다. 실록이 사초와 시정기 등을 기초로 재구성한 것이라면 일기와 등록류는 현장에서 바로 기록한 생생한 자료였습니다. 공기록 외에 사기록도 많이 생성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개인일기는 기록자의 주관적 견해와 다양한 내용이 자유롭게 적혀 있으며 관찬 사료에서 간과되기 쉬운 일상의 소소한 기록이 담겨져 있습니다.
국보 제 303호로 지정된 승정원일기
▲ 국보 제 303호로 지정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그러나 보존·관리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조선은 고려와 달리 모든 행정이 문서로 이루어졌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모든 문서들을 중앙으로 집결시켰습니다. 이 문서들은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했지만 대부분 폐지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당시 폐지의 용도가 매우 다양하였기 때문에 하급관리들이 관청에 쌓여있는 문서들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왕실도서관인 홍문관에 소장된 책도 낙질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상소들도 옮겨 적은 뒤 모두 폐지로 썼습니다. 안보와 외교문서들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경국대전에 명시된 문서 훼손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