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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탈국가적 상상력과 한국소설』을 주제로 심포지엄 개최!
관리자 - 2007.05.31
조회 1043

 ▶ 6월 2일(토) 오후 1시 30분, 서울 만해ngo센터에서..
 ▶ 논쟁적 소통의 장(場) 마련!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탈국가적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는 우리 문학의 현상과 위상과 비판적 논의들에 대해『문학동네』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 복도훈씨가 ‘공포와 동정’이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그리고『비평과전망』주간 이명원씨가 ‘마음의 국경’,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며 경북대에 재직 중인 서영인 교수가 ‘월경(越境)의 발목’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에 나설 예정이다.


 이어『작가와비평』편집위원 최강민·고봉준 씨와『실천문학』편집위원 오창은 씨, 고려대 강사 정은경 씨 등 소장 평론가들이 토론자로 나서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강영숙의『리나』, 김재영의『코끼리 등 최근 화제작을 중심으로 소장 평론가들이 자신의 입장을 밝혀 ‘논쟁 부재’로 평가받는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여성, 탈북자 등의 급속한 유입으로 유례없는 다문화 사회로의 본격적인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전환의 움직임은 특히 30~40대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탈국가적 상상력’으로 집중적으로 분출되어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 맞춰 볼 때 이번 심포지엄에 대한 문학계의 관심이 적지 않다.


 이번 심포지엄의 분석 대상이 되고 있는 김재영의『코끼리』와 강영숙의『리나』, 전성태의『국경을 넘는 일』, 정도상의『소소, 눈사람이 되다』등의 작품들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이러한 젊은 문학의 상상력은 우리 사회가 견고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성찰하고 ‘횡단’하면서 새로운 ‘월경(越境)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음을 알게 하며, 우리 안의 타자가 된 이들에 대한 논의는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을 성찰하는 일이다.


 또한 소설 작품에 나타난 탈국가적 상상력을 성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공생(共生)의 윤리학을 형성하는 작은 단서가 될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한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한국문학은 근대 이후 계속 우리라고 하는 ‘민족’, ‘국가’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읽혀왔는데 최근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나 외국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의 경향은 그러한 민족적 개념을 벗어나거나 그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러한 탈국가적 상상력에 대해 최근 몇몇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들이 경향별 잡지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논의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며 “지면상의 논의도 중요하지만 보다 열린 공간에서 서로의 견해와 인식의 차이를 공유함으로써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을 경기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포럼x>(회장 이명원)는 문학비평의 새로운 담론 창출을 위해 2006년에 결성된 소장 비평가들의 콜로키움 모임이다.


 현재 22명의 소장 평론가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예지를 중심으로 구축된 비평적 지형을 넘어서 문학장(文學場)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통과 논쟁 그리고 대화의 시스템을 실험하고 담론적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의 : 031)952-7804



▶문학 심포지엄 개요
– 때 와 곳 : 2007년 6월 2일(토) 오후 1:00-6:00 | 서울 만해ngo센터 (장충동 소재)
– 발 제 자 :  복도훈, 「공포와 동정」 | 문학평론가, 『문학동네』 편집위원
              이명원, 「마음의 국경: 연대는 불가능한가」 | 문학평론가, 『비평과전망』 주간
              서영인, 「월경(越境)의 발목」 | 문학평론가, 경북대 교수
– 토 론 자 :  오창은(문학평론가, 『실천문학』 편집위원), 최강민(문학평론가, 『작가와비평』 편집
              위원), 정은경(문학평론가, 고려대 강사), 고봉준(문학평론가, 『작가와비평』 편집위
              원) 외


▶ 주요 발제 내용 발췌
* 복도훈 발제문 「공포와 동정 : 최근 한국소설에 재현된 타자성과 정념의 정치경제학」 중에서


비단 김재영의 「코끼리」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주 노동자들이나 불법 체류자들이 문학적으로 재현될 때마다 반드시 따라붙는 문화적 표상들도 동정이라는 정념과 관련지어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끼리」에서 ‘외(지옥)’에 빠진 아버지의 표상인 코끼리는 본래 신들의 왕 인드라를 태우는 구름이었으며, 「아홉 개의 푸른 쏘냐」에서 헐벗은 쏘냐의 피부는 러시아의 백향목과 바이칼 호수의 흰빛을 닮았다는 등의 대목들. 나는 이주 노동자들과 불법 체류자들, 그리고 한국에 비해 정치경제적 약소국에 속하는 (비)국가 출신의 타자들을 작가들이 재현할 때마다 그들 나라의 코드화된 문화적 상징이나 기호를 반드시 동원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랍인이면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어야 하고 베트남인이면 6성조의 신비로운 발음을 해야 하며 네팔이나 스리랑카인은 시바신과 인드라를 모셔야 한다면, 그럼 조지 w. 부시는 텍사스 출신의 카우보이 복장에 말을 타고 있어야 하는가. 물론 나는 이라크를 폭격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췌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더라도 그를 동정할 필요는 조금도 느끼지 않겠지만, 미국과 다국적군이 폐허로 만들어 놓은 이라크 사람들의 삶은 기꺼이 동정한다. 그렇다고 이라크인들이 아라비안나이트를 읽고 길가메시 서사시를 이해하기 때문에, 또는 그들이 더 이상 아라비안나이트나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지 못할 처지에 빠졌다고 동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진정한 동정은 나의 자기 만족,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즉자적 감상주의를 넘어서는 비인간적 감수성을 요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이명원 발제문 「마음의 국경 : 연대는 불가능한가」 중에서


나는 이주 노동자를 완전한 타자로 간주하여, 주체성의 영역 바깥으로 밀어내는 평자들의 비평적 시각이야말로, 노동의 전(全) 영역에서 보트피플화해 가는 현대적 노동조건을 회피하는 나르시시즘적 주체인식론 또는 현실에 대한 이론적 ‘분리장벽’이라 말하고 싶다.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의 모국으로부터 이탈된 존재라는 점에서 이역(異域)에서의 노동과 생존이 위협받지만, 이러한 현실을 압도적으로 구조화해내는 메커니즘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이 자본의 세계화는 국민경제로 상징되는 비가시적 국경선을 무력화시키면서, 국민경제 내부의 노동구조를 세계경제의 프랙탈화된 지배-모순구조로 재조직한다. 그래서 오늘의 노동 현실은 국제적으로, 또 국내적으로 노동자 모두를 숨 가쁘게 이동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노동계급에게 존재하는 모든 장소들은, 그들의 인종과 국적성의 규정력도 작동하는 것이 사실이나, 최종심급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사물화이고, 따라서 세계 전체는 이들 노동계급에게 이역(異域)으로 표상된다. 
타자성에 대한 유연한 인식은 거듭 강조될 필요가 있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타자성의 정치학이라는 세련된 담론이, 노동계층 내부의 미세한 타자성의 분화와 적대를 오히려 가중시키는, 자본 측에서의 ‘타자성의 세분화’ 메커니즘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화된 자본은 정체성의 정치를 노동계급 내부에서 오히려 심화시킴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인 홉스적인 ‘이리의 사회’를 구성해내고 있다.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일차적 분화가 완성된 데서 더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국내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간의 상호갈등 등의 타자성의 세분화가 증폭되면서, 연대를 통한 비판적 동일자로서의 의식은 실제로 무력화된다.


* 서영인 발제문 「월경(越境)의 발목」 중에서


6·15를 거쳐서 이전보다 분단의 경계를 넘나들기가 비교적 쉬워진 지금, 삼팔선 경계 이북의 타자들과 만나는 관점은 또 다른 양상을 낳고 있다. 분단의 비감이나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익숙한 관습 이외에도 탈북과 세계적 탈국경화 현상이 분단의 문제와 맞물려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잠재해 있었던 분단의 무의식은 이제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이 등장한 타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분단과 통일, 혹은 탈북에 대한 서사가 한국인의 국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물론 이미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세대들에게 분단에 대한 실감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실제로 분단보다는 세계적 자본주의화에 의한 자본의 경계나 이동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실감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분열의 징후이기도 하다. 이미 그러해 왔지만, 더욱 더 분단의 경계나 분단선 이북을 바라보는 시선은 훨씬 더 다양한 파장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대적으로 차이를 빚을 수밖에 없는 탈북에 대한 시선은 그것 자체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의식의 국경과 그 균열을 점검하는 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그 균열의 지점을,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선의 차이들을, 거기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성찰의 거점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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