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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물관, 포천 출신 문인 허전 선생 영정 기증 받아!
admin - 2008.04.14
조회 1039

▶ 허전(許傳) 선생, 조선 후기 문신으로 포천 출신
▶ 후생들이 세운 재실에 모셔있던 영정, 고향 찾아 도박물관에 기증


조선 후기 문신으로 포천 출생의 허전(許傳) 선생의 영정이 그의 고향인 경기도를 대표하는 박물관인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재열)에 기증됐다.


경기도박물관에 따르면, 최근(2008년 4월 2일) 경남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에 있는 재실인 이택당(麗澤堂 : 이택당은 당호로 한자로는 ‘려’자이지만 문중에서는 ‘이’자로 읽음. 허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생들이 고종 28년〈1891년〉에 세운 재실. 매년 3월 3일 석채례 봉행) 물산영당(勿山影堂 : 물산영당은 재실내 영정을 모셔 놓은 건물의 당호임)의 당임(堂任)인 김상원 · 이병도씨가 허전(許傳) 선생의 영정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다는 했다는 것.


이택당 물산영당 당임인 김씨와 이씨는 경기도박물관을 찾아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에 영정을 모셔 많은 이들에게 기호(畿湖) 남인학자로서 유림의 종장(宗匠)을 지낸 선생의 큰 뜻과 공덕을 널리 알리고자 기증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기증된 초상화는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허전(許傳) 선생이 와룡관(臥龍冠)을 쓰고, 심의(深衣)를 입고, 공수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좌안 8분면의 전신좌상이다.


이 초상화의 특징은 허전 선생 앞에는 입식탁자가 놓여있고 탁자 위에는 서책이 놓여있어 그의 학자로서의 고귀한 인품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간결한 연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엄숙하고도 경건한 느낌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서탁을 인물 앞에 배치한 형식은 구도상으로도 큰 의미를 주는데 화면속 인물과 관상자 사이에 일종의 경계선을 긋고 거리감을 유도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와 유사한 형식으로 대원군 50세(1869)에 이한철이 그린 <대원군초상화>가 있어 1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 초상화는 조선 사회를 지배한 학문숭상 정신이 강하게 배어있는 유학자의 모습이며 조선시대말의 초상화 양식을 대표하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허전[1797(정조21)~1886(고종23)]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로(以老), 호는 성재(性齋), 아버지는 정언 형(珩)이고 포천 출생이다. 안정복(安鼎福) · 이익(李瀷) · 황덕길(黃德吉)을 이은 성호학파(星湖學派) 계승자이며, 기호(畿湖) 남인학자로서 당대 유림의 종장(宗匠)을 지냈다.


1835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이조좌랑 · 함평현감 ·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 한성부좌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경연(經筵)에 참가하여 국왕에게 유교경전을 강하는 한편, <사의(士儀)> · <종요록(宗堯錄)> 등을 저술하여 학자적 관료의 면모를 보였다. 1862년 삼남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조세 및 토지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통해 농민항쟁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려는 <삼정책(三政策)>을 올렸다. 1864년(고종1) 김해도호부사로 부임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향약(鄕約)을 강론했으며 유림을 모아 직접 교육을 하기도 했다.


한편 경기도박물관은 기증받은 초상화를 보존처리 등을 위한 1~2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며, 이 작품은 비단 재질로, 세로 71.5cm, 가로 136cm 크기다.


※자료 문의 :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실 김영미 학예연구사(288-5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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