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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탄신 250년 기념 순회강좌 다산의 경기 투어 -“다산과의 만남”
관리자 - 2012.08.03
조회 1375
다산 정약용 탄신 250년 기념 순회강좌
다산의 경기 투어 “다산과의 만남”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다산 정약용 탄신 250년을 맞아 도내 시군 주민자치센터,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한 순회 강연·교육 프로그램
▶지역 사회에 실학 교양 지식 보급을 통한 실학의 대중화 및 저변 확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에서는 다산 탄신 250년 기념사업을 통해 경기실학의 위상을 정립하고, 다산사상의 대중화를 위한 지역 순회강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다산의 경기 투어(tour) (부제 : “다산과의 만남”)>란 제목으로 올 연말까지 총 30회 진행할 계획이다. 강좌는 매회 2시간 (강의 1시간 + 맞춤프로그램(옵션) 1시간)으로 진행되며 도내 시군의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복지시설, 초·중·고등학교 등 20인 이상 단체(기관)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이미 지난 4~5월부터 서수원도서관 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매주 목요일 총 8회의 강의가 성황리에 개최된 바 있다. 본 강의에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을 비롯해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조성을(아주대 교수)등 저명한 실학연구자들이 강사로 나서 주로 야간 강좌로 진행, 큰 호흥을 얻었다.

강의내용은 주로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그의 실학정신>, <실학적인 인성 함양>, <실학자들의 자녀 교육 및 공부법> 등 다산 정약용과 실학 전반에 관한 강의를 중심으로 하되 신청기관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실학속의 다양한 강의주제를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다.

또한 강연 이외에 신청기관의 여건에 맞는 맞춤형프로그램(콘서트, 유적 답사, 체험실습 등)을 병행함으로써 재미있는 인문학 대중강좌를 기획하였다. 먼저, 실학 체험실습으로는 먼저 정약용이 강진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지은 2천자문인 <아학편>스탬핑을 활용하여 실학과 한자를 동시에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정약용 초상 퍼즐맞추기,<목민심서> <경세유표> 옛책만들기, 탁본 체험 등 다양하고 흥미를 끌 수 있는 실습을 함께하는 재미있는 체험학습이다.

그 밖에, 실학 관련 작은전시회, 강좌 후에 해당 지역에 있는 실학유적지 답사, 최근 트렌드인 강연과 콘서트가 어우러진 실학콘서트 등 강의실 밖에서 실학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옵션 프로그램도 신청자에 한해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 별첨 1. 실학자 정약용 소개

정약용(丁若鏞, 1762년 음력 6월 16일 ~ 1836년 음력 2월 22일)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 시인 철학자 과학자 의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대대로 관직을 이어 온 명문가로 아버지는 진주목사 재원(載遠)이며, 어머니는 윤두서의 손녀이다.

다산은 16세부터 성호 이익 선생이 남긴 글을 읽었다. 22세에는 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교유를 넓혔다. 젊은 시절에는 이벽으로부터 서양 학문에 관하여 듣고 서양책을 탐독했다. 28세에 과거급제 후 규장각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지식을 접했다. 그는 열린 마음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관료시절의 업적은 특출한 바가 있었다. 배다리 설계, 수원성제와 거중기의 설계 및 각종 경학서의 교열 등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의 재능을 아끼던 정조가 승하한 후 천주교도 박해에 연루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강진으로 유배되지만, 다산은 유배생활을 학문을 완성하라고 하늘이 내려준 기회로 받아들여, 육경사서六經四書의 경학과 경세적인 실학 연구에 힘썼다.

다산이 살던 경기도 광주부는 근기실학 경세치용파 실학의 고장으로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등 17c 후반 ~ 18c에 형성된 성호학파의 근거지였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학문적 역량을 키워 온 다산은 18c 서울 중심으로 발전된 박제가 등 이용후생파의 정신과 사상을 회합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그리고 중앙 정치의 경력, 지방행정의 경험, 암행어사(暗行御史) 순찰, 부친의 임소(任所)에 수행한 견문, 그리고 귀양살이 등은 그대로 생생한 교훈이며, 평생을 통하는 힘이었다.

다산은 1818년(순조18) 유배에서 풀려 강진에서 고향집 초천으로 돌아와 만년을 보냈다. 진실로 18년만의 일이다. 그는 유배기간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리고 귀향 이후에도 옛 제자들과 서로 내왕하면서 강진에서 있을 때와 다르지 않게 저술활동을 하였다. 1822년(순조 22) 회갑을 맞은 그는 평생의 저술 작업을 마감하고, 그간의 저작 503권 182책을 《여유당집》으로 정리하였다. 그 중 불후의 명저로 손꼽히는 《경세유표》에서 새 시대를 지향하는 기준들을 포괄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한 국가관을 제시했다.

★ 문 의 : 실학박물관 학예팀 양상훈 031-579-6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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