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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실학 문화심포지움 개최
관리자 - 2013.07.01
조회 2314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실학 문화심포지움 개최


<주요 내용>
○ 주 제 : 실학문화 심포지움 개최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기간/장소 : 2013. 7. 5.(금) 14:00∼18:00 가평군청 대회의실(3층)
○ 주 최 : 가평문화원,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 후 원 : 가평군, 가평향교
○ 내 용 : 조선 최고의 경세가 김육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관련 유적을 향후 역사문화공간으로 개발 활용하기 위해 발표 토론의 장을 마련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과 가평문화원은 오는 5일(금) 오후 2시부터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조선 최고의 경세가 잠곡 김육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실학문화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한다.
 
재단과 문화원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잠곡 김육 선생의 업적과 정신 계승은 물론 경기 북부지역의 정신 문화자원을 개발하여 도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제고하자 한다.
 
이날 심포지엄은‘대동범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을 주제로 ▶잠곡 김육 선생 현양을 위한 제언(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잠곡 김육의 생애와 활동(정만조 성호학회 회장) ▶잠곡 김육 유적을 활용한 가평군 문화콘텐츠 개발(강진갑 경기대 교수) 등 다양한 주제발표가 예정돼 있다. 발표 이후에는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을 좌장으로 발표자와 참석자들간의 자유로운 토론 진행된다.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은 조선시대 최대의 개혁인 대동법(大同法)을 추진한 큰 학자이자 관료였다. 그는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가평군 청덕동(현 청평)에 은거하여 10여 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며 야인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가평지역은 조선의 개혁을 꿈꾸며 실학적 경륜을 쌓아온 잠곡 선생의 개혁정신의 산실이다.
 
잠곡 선생은 인조반정이후 관직에 나가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시행하고 수레, 수차 및 동전의 도입과 활자의 제작에도 진력했다. 이후 70세에 재상에 올라 충청도의 대동법을 주관했고,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전라도 대동법을 시행하던 중 79세로 별세하였다.
 
잠곡은 진정 백성을 위한 재정 개혁을 이루려 했다. 대동법은 공납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세금으로 내는 현물을 쌀이나 베로 받은 제도였다. 조선시대 공물제도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게 하였는데, 부담이 불공평하고 수송과 저장에 불편이 많았다. 요컨대 공물로 내는 세금의 계량화 합리화가 어려웠다. 또 방납(防納:대납), 생산되지 않는 공물의 배정 등 관리들의 부패와 해악으로 농민 부담이 커져 있어 잠곡은 이를 중지시키고자 했다. 이 제도는 그 동안 몇 번이나 실현에 옮기려다 부정부패에 얽힌 관료들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미루어지곤 했다. 그러나 잠곡은 농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제도의 실현을 위해 생애 마지막까지 열정을 다하였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그가 추진했던 대동법과 제반 개혁은 조선후기 사회변화의 기폭제였다. 특산품과 현물을 세금으로 거두는 대신 그것을 쌀로 거둠으로서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민생과 나라가 살아났던 것이다. 실학 탄생의 진정한 배경이었다.
 


[참고자료 1]
※ 실학 문화심포지움 일정
– 주제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
– 일시 : 2013년 7월 5일(금) 14:00~18:00
– 장소 : 가평군청 강당(3층)(경기 가평군 가평읍 석봉로 181)
– 주최 : 가평문화원, 실학박물관
– 후원 : 가평군, 가평향교
– 참석예상 : 300여명


실학 문화심포지움 일정에 관한 표입니다.
시간 내용
13:30~14:00 참석자 등록(방명)
14:00∼14:20 ▶ 개회식
환영사 : 가평문화원장
인 사 : 가평군수
인 사 :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축 사 :
14:20~15:50 ▶ 기조발제 및 주제발표
기조발제 : 잠곡 김육 선생 현양을 위한 제언
발제 : 이성무 교수(학술원 회원, 전 국사편찬위원장)
제1 주제 : 잠곡 김육의 생애와 활동
발표 : 정만조(국민대 명예교수, 성호학회 회장)
제2 주제 : 잠곡 김육 유적을 활용한 가평군 문화콘텐츠 개발
발표 : 강진갑(경기대 교수, 도문화재위원)
15:50~16:00 휴식(장내정리)
16:00~18:00 ▶ 토론 : 좌장 김시업(실학박물관장, 성균관대 명예교수)
발표자 및 관계자, 참석자 누구나 질문·답변하는 토론의 자리


[참고자료 2]
→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경세가(經世家) 잠곡 김육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괄목할 만한 개혁이 조선 중기 재정 혁명 ‘대동법’임.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였음.
대동법 시행에 앞장선 김육선생은 실학(實學)에 바탕을 둔 경제학(經濟學)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고, 성리학(性理學)을 비롯하여 정치(政治)·천문·지리·병략(兵略)·복서(卜筮)·율력(律曆) 등 다방면에 정통했음.
효종 때 충청도에서의 <대동법(大同法)> 실시와 동전(銅錢) 주조는 그의 탁월한 경제정책의 식견으로 이룩한 업적이라 할 수 있음.

○ 잠곡 김육(金堉, 1580-1658) 소개
– 15세에 부친이 사망하고 조모와 모친을 차례로 잃어 서울의 고모댁에 의탁하였음. 선조38년(1605)년 사마시(司馬試) 합격으로 성균관에 입학
– 광해군 1년(1609)년 동료들과 함께 청종사오현소(請從祀五賢疏: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 5인을 문묘에 향사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당함.
– 34세에 경기도 가평 잠곡(潛谷)으로 이주한 후 인조반정 후 다시 관직에 진출할 때까지 10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농사와 숯장사 등으 로 생계를 유지했음
–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올라 금오랑(의금부도사)의 벼슬을 받고 다음 해 봄 이괄의 난으로 임금이 피난하자 모시고 다닌 공으로 음성 현감이 됐고, 그 해 증광문과에 급제, 이어 삼사·이랑을 거쳐 사인·부제학·성균좨주·예조판서를 역임, 효종 2년(1651) 영의정에 이 르렀음.
– 김육이 관료로 진출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백 성들의 곤궁한 생활이 극에 달한 시기였음. 충청감사로 있을 때 대동 법을 실시하도록 상소하여 공납의 불균형·부역의 불공평을 없애고자 했으나 왕의 승낙을 받고도 조정에서 실시하지 않았음
– 효종의 즉위(1649년)와 더불어 우의정으로 지내게 된 김육은 각 층 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을 다시 상소해 충청지방에 대동법을 시 행하였음. 대동법이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자 1657년부터 대동법을 호남으로 확대하기를 노력해 김육 선생이 사망하던 해(1658년) 전라 도 연해지역의 농민들이 혜택을 보았음. 이후 전라도 산간지역에, 경 상도에 순차적으로 대동법의 시행이 확산되었음
– 평택시 소사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동법시행기념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40호)는 대동법의 혜택을 입은 충청도 주민들이 김육의 공덕을 기 리며 충청으로 들어오는 삼남대로의 길목인 평택에 세웠음(1659년)

– 제향서원 : 가평(청평) 잠곡서원(잠곡 김육을 홀로 제향한 곳)
개성 숭양서원 / 설악 미원서원 / 강동 청계서원


[참고자료 3]
잠곡 김육 초상_실학박물관 소장
잠곡 김육 초상_실학박물관 소장

충청도에 시행한 대동법 시행 규정 <<호서대동사목 />> ” src=”http://ggcf.kr/wp-content/uploads/2013/10/885b0c08-623c-4968-a698-5d8e179a3e681.jpg”/><br />
 충청도에 시행한 대동법 시행 규정 <<호서대동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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