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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초상화 기증 후손에게 모사본과 감사패 전달!
관리자 - 2008.09.09
조회 654

▶ 오는 28일까지 도박물관에서 포은 초상화 전시중
▶ 현존하는 포은 정몽주 초상화중 가장 오래된 유물


경기도박물관(관장 김재열)은 지난 3일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초상화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인 포은 정몽주의 초상화를 기증해 준 정몽주의 종손인 정래정(鄭來晶)씨에게 기증에 대한 보답으로 모사본과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 초상화는 용인의 포은선생 종가 종손인 정래정씨가 보관해 오다가 지난 2006년 12월에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당시 훼손이 심한 상태여서 경기도박물관에서 1년여간에 걸친 보존처리 및 모사작업을 거친 후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오는 28일까지 계속될 경기도박물관의 『초상, 영원을 그리다 – 경기도박물관소장 초상화 특별전』에서 정몽주 초상화 진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에 초상화를 기증한 정몽주의 후손은 용인시 모현면에 위치한 정몽주 묘역 일대에 대대로 거주하여 왔으며, 종손 정래정씨는 “선생의 묘가 위치한 경기도를 대표하는 경기도박물관에 초상화를 모셔 많은 이들에게 해동 유학의 조종(祖宗)이자 선비의 절개를 대표하는 선생의 큰 뜻과 공덕을 널리 알리고자 기증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기증된 초상화는 화면의 왼쪽에 ‘가정○○고본(嘉靖○○皐本)’, 오른쪽에는 ‘포은○○○상(圃隱○○○像)’이라 쓰여 있는데, 이 표제로 보아 『포은정선생문집(圃隱鄭先生文集)』에 기록된 1555년(명종 10)에 이모된 본으로 추정된다. 정몽주 초상 중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1110호보다 70여년 가량 앞선 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입고 공수 자세를 하고 있는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의 전신상이다. 얼굴이나 단령의 선묘 특징, 의자의 방석 끈, 같은 방향으로 놓여있는 발, 단령의 트임 사이로 겹겹이 보이는 포 등 전체적으로 조선 초기 공신도상(功臣圖像)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정몽주(1337∼1392)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경상도 영천 출생이며 호는 포은(圃隱)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공민왕(恭愍王) 때에 성균관(成均館) 학감(學監)으로 있으면서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세워 후진을 가르치고, 밖으로 향교(鄕校)를 베풀어 유학(儒學)을 크게 진흥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고, 명나라와의 외교에 힘썼으며, 한때 배명친원(排明親元) 정책을 반대하다가 유배되기도 했고, 이성계를 따라 왜구를 토벌하기도 하였다.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개성 선죽교에서 조영규와 그 일파에게 암살당했다.


그는 천품이 지극히 높고, 성리학을 연구해 조예가 깊었다. 그의 시문은 호방, 준결하며, 시조 〈단심가(丹心歌)〉는 그의 충절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후세까지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문집으로 ≪포은집≫이 전하고 있다. 그의 사후 조선 조정에서는 그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의정에 추증하였다. 중종 때 문묘에 배향되었고 그 외 11개 서원에서도 제향되었다. 영천의 임고서원(臨皐書院) 등 몇 곳의 서원에는 그의 초상을 봉안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초창기 성리학자로서 불교국가였던 고려를 유교 이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형태로 탈바꿈하려 했던 그의 시도는 비록 실패했으나 정도전 등에 의해 그 뜻이 이어져 유교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 조정을 탄생시켰다. 그의 학문은 새로운 사조로서 조선 초기 사림파에 영향을 미쳐 조선 성리학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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