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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간 실학토끼’ 경기도 실학박물관 특별전 개최
관리자 - 2013.11.19
조회 2557

‘달에 간 실학토끼’

경기도 실학박물관 특별전 개최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은 나로호 발사 성공을 기념하여 달에 대한 우리 조상의 오랜 꿈과 상상이 과학으로 실현되는 것을 주제로 한 ‘달에 간 실학토끼’ 특별전을 11월 20일에 개막한다.

KDB산업은행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전통시대 달에 관한 신화, 혼천시계와 아스트로라브, 갈릴레오와 홍대용 등 실학시대 과학문화가 3D 체험 영상으로 제작되어 전통시대 과학 유물의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체험전시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총 3가지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부 ‘신화와 달’에서는 달토끼 신화 및 일월병행 신화를 가진 우리나라의 다양한 달 신화들을 소개하고 한다. 2부‘생활과 민속의 달’에서는 고대 일월병행 신화가 ‘태음태양력’이라는 달력으로 변화되어 달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3부 ‘과학의 세계로 간 달’에서는 신화 속의 달이 망원경의 발명으로 신화가 아닌 천체의 대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특히 3부에서는 국보 230호인 혼천시계를 3D로 재현하여 다소 어려운 과학문화재를 쉽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창의체험 전시로, 실학자들이 가졌던 창의적인 사고가 과학적 발전을 가져왔음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며 “달에 대한 꿈과 상상이 과학으로 실현되는 것을 청소년들이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특별전 주요작품 설명
혼천시계 – 송이영의 자명종(복원품) 및 3D 재현품

1669년 홍문관에서 송이영이 제작한 자명종이다. 흔히 혼천시계라고도 불린다. 길이 약 120cm, 주요 높이 약 98cm, 폭 약 52.3cm 크기의 나무 궤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시계 및 타종장치와 혼천의로 이뤄져 있다. 시간 뿐 아니라 날자, 달, 해, 계절 등의 정보를 한 번에 제공하는 일종의 멀티미디어시계로, 호이헨스(1629~1695)의 진자시계를 일부 응용하면서도 세계 최초로 추운동을 통해 작동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복원된 혼천시계는 매시간 종소리를 내면서 시패로 시간을 알려주고 태양위치와 달의 월령(음력일수)까지 알려준다.

앙부일구仰俯日晷

1434년 세종대에 백성들을 위해 혜정교(현 광화문 우체국 북쪽에 있던 다리)와 종묘(宗廟) 앞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 아쉽게도 세종대에 만든 앙부일구는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숙종대에 만든 것이 전하고 있다. 둥근 모양의 시계판 안에 세로선(시각선) 7줄과 가로선 13줄(계절선)을 그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아스트로라브

실학자 유금이 1787년에 만든 이슬람식 별시계. 앞면에는 별조견판이, 뒷면엔 날짜와 시간을 측정해 볼 수 있는 판이 있다. 동아시아 사람이 만든 아스트로라브로는 유일한 것이다.

평혼의平渾儀

실학자 박규수(1807~1877)가 종이로 만든 별자리 조견판으로 별자리의 위치를 통해 계절과 시간을 알 수 있다.
굴절망원경으로 1700년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631년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서교사 로드리게스로부터 받아온 것이 최초라 전한다.

■ 참고자료
‘실학박물관 특별전: 달에 간 실학토끼’를 알아 본다
프롤로그 : 토끼는 왜 달에 갔을까

이번 전시는 나로호 발사 성공을 기념하여, 달에 대한 우리 조상의 오랜 꿈과 상상이 과학으로 실현되는 것을 주제로 마련된 것입니다.
달에 관한 신화, 혼천시계와 아스트로라브, 갈릴레오와 홍대용 등 실학시대 과학문화가 3D 체험 영상으로 제작되어 학생들도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실학토끼는 왜 달에 갔을까요? 이 전시를 통해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1부 : 신화와 ‘달’
  • 해와 달, 신화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서양과 달리, 동양은 해와 달이 함께하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 전성기 때의 무덤 벽화를 보면 해와 달이 늘 함께 출현했으며, 고구려 시조를 ‘일월의 아들(日月之子)’이라 표현하였다. 동해 바닷가에 전승된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도 일월신화(日月神話)의 변모된 형태이다. 고구려 벽화에는 해신와 달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해신과 달신은 중국 고대의 신화적인 인물이 복희와 여와가 해와 달과 결합되면서 생긴 독특한 양식이다.
  • 달에 토끼가 산다?
    동아시아 음양설에 의하면 달은 해에 견주어 음(陰)이다. 토끼는 달의 정령으로서 생장과 번창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달토끼 신화는 도교뿐만 아니라 불교와도 관련이 깊다. ‘달 속에 토끼가 산다’는 관념은 석가모니 전생의 삶을 담은 인도의 불교 설화집 ‘자타카(본생담·本生譚)’에서부터 등장한다.
    굶어 죽어 가는 노인으로 변신한 제석천이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데, 여우는 강으로 가서 잡은 물고기를 바치고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 과일을 따 가지고 온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던 토끼는 자기 몸을 불구덩이에 던져 음식으로 바치는 사신공양(捨身供養)을 하는데 제석천이 이를 갸륵하게 여겨 토끼를 달 가운데 살게 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토끼는 왜 방아를 찧고 있을까. 항아가 불사약을 훔쳐서 달에 도망간 신화의 영향으로 토끼가 불로불사약을 찧고 있는 그림이 많다.
  • 나라마다 다른 달토끼 – 달분화구 그리는 체험
    달에 그려는 검은 무늬는 민족마다 다른 상상력을 낳았다.
    페루는 두꺼비, 스페인은 귀여운 당나귀, 유럽 남부는 책 읽는 소녀, 중국은 한쪽 집게를 높이 치든 게의 모습을 떠올렸다.
2부 : 생활과 민속의 ‘달’

우리 조상들은 한 달을 주기로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다시 그믐달로 끊임없이 차고 기우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곤했다. 또한 달은 생명력을 상징하여 임신을 꿈꾸는 여성들은 이른바 ‘달힘 마시기’라 하여 보름달의 정기를 입으로 들여 마시기도 했다.
달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는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선암사 원통전 꽃창살 속에 새겨진 방아찧는 토끼나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탑비에 조그맣게 새겨 있는 계수나무 아래 토끼도 귀엽고 재미있다.
계수나무 달토끼는 불교 문화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자수, 도자기, 목공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노랫말에도 담겨있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이어지는 윤극영의 동요나 ‘달 속에 박혀 있는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부모님과 함께 천년만년 살고 싶다’라는 청양지방의 민요 등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 대대로 달에 대한 동경과 사상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보름달만 같아라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보름달 명절이다. 이 두 명절은 한 해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특별한 보름이었다. 그중에서 대보름은 세시풍속(歲時風俗)에 따르는 어떤 명절보다도 큰 명절이었다. 우리 민족은 달이 뜨는 보름밤이면 시를 한 수 읊어야 하고 강강술래를 덩실덩실 추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름달만 같아라’는 덕담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달을 숭배한 우리 민족의 하늘에 대한 정서이다.
  • 해와 달을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다
    전통사회에서 달력은 하늘의 시간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어 생활에 쓰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실제 알 수 있게 해주는 게 달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달력을 만드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의 몫이었다. 시간이란, 현대인에게는 사회 구성원간의 약속이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의 운행에서 얻어지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만인이 모두 경험하는 보편적인 기준을 가지고 측정한 것이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일 년을 주기로 정확하게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천상의 변화를 관찰했을 때 가장 빨리 그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첫째 하루 동안 낮과 밤이 바뀐다는 것이고, 둘째가 달이 차고 기우는 현상이다. 이를 삭망월(朔望月)이라 하며 달이 망(望)에서 다음 망까지, 삭(朔)에서 다음 삭까지 되는 것을 말한다. 1삭망월의 평균길이는 29.5306일이다. 세 번째가 계절의 변화, 즉 일년의 길이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같은 경우 일년의 길이는 일찍 감지할 수 있는 일이다. 일년의 길이를 회귀년 혹은 태양년이라고 한다. 현재 1회귀년은 365.2422일이다. 이 세가지의 시간 척도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 바로 달력이다.
    한국과 같은 전통농업사회에서 달의 역(曆)인 음력은 곧 생활력이자 농사력이었다. 음력에 따라 참다운 한 해의 시작은 다름아닌 정월 대보름이었는데, 이는 대보름이 한 해의 첫 만월이기 때문이다. 달의 변화를 배제하고 오직 태양력만 추구한 서양과 달리, 동양은 태양과 함께 달의 위상 변화를 달력에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동양은 달의 위상 변화를 기준으로 한달을 정한 음력과 태양의 위치에 따른 24절기를 병행한 ‘태음태양력’을 사용하였다. 달력에서도 서양은 태양, 동양은 해와 달을 병행한 것이다.
3부 : 과학의 세계로 간 ‘달’
  • 달은 해와 함께 인류 최초의 시계였다.
    인류 최초의 시계였던 해와 달과 별. 우리 조상들은 이를 이용한 다양한 시계를 만들었다. 앙부일구를 비롯한 해시계와 물시계, 서양식 자명종을 이용한 송이영의 혼천시계, 실학자 유금이 만든 이슬람 별시계인 아스트로라브 등이 그것이다. 고대인들이 신화로 생각했던 달은 바야흐로 과학의 달로 발전되어 갔다.
    인간은 해와 달의 운행을 통해 시간을 측정했다. 달의 위상과 태양의 운행을 통해 한 달의 시간과 일 년의 시간이 정해졌다. 특히 동양은 달을 통해 1년의 흐름을 인식하는 ‘음력’을 만들었다. 시간을 측정하고 알려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전통적으로 ‘관상수시(觀象授時)’, 즉 천문을 관측하여 때를 알리는 일은 제왕의 임무이자 정치적 권력의 표상으로 관념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표준 시간을 제정하는 일은 중앙집권의 통일왕조에서는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정확한 표준 시계는 예외 없이 왕이 정무를 보는 편전 가까이에 있었다. 예를 들어 물시계인 자격루가 있던 세종조의 경복궁 보루각은 경회루 남쪽으로 왕이 정무를 보던 사정전 서쪽 가까이에 있었다. 광해군 때의 창경궁 보루각은 문정전의 문정문 밖 가까이에 있었다. 숙종조의 창덕궁 제정각은 희정당 남쪽 행랑에 있었으며 후에 북쪽 계단에는 해시계를 두고 안에는 물시계를 두었다. 현종은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를 홍문관에 두고 관리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 안녕! 갈릴레오, 안녕! 홍대용
    “달 표면은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모양이 아니라 표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갈릴레오
    인류 최초로 망원경에 비친 달을 본 사람은 천문학자 갈릴레오였다. 1609년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했다.
    갈릴레오 망원경이 처음 국내에 들어 온 것은 1631년이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중국 등주에서 선교사 로드리게스를 만나 망원경을 선물로 받아온 것이 최초였다.
    갈릴레오 망원경은 천문에 관심있던 실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던 기구이기도 했다. 특히 담헌 홍대용은 농수각이라는 사설천문대를 만들어 망원경으로 월식을 관측했다.
  • 실학자와 망원경
    중국 북경에 간 실학자들 중에 망원경으로 해와 달을 관측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담헌 홍대용을 비롯하여 18세기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도 70대에 중국 사행을 가서 서양인이 그린 달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19세기 실학자 최한기와 이유원도 망원경에 비친 달을 본 인물들이다.
    “서양인은 일명 시원경(視遠鏡)이라고도 하는 천리경을 만들었다. 천리경으로 천상을 보면 해와 달과 별의 생김새를 모두 판별할 수 있고, 오성(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형상 또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달 그림자를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여 광한궁(廣寒宮)이니, 계수나무 그림자니, 토끼가 약을 찧는 모습이니 하는 허황한 이야기를 믿어온 것이다.”- 강세황
    “망원경으로 달을 보니 달이 아주 가까이에 있고 그 무늬는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였다.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옥토끼가 산다는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일뿐이다.” – 이유원, 임하필기
혼천의를 돌려보자 – 혼천시계 3D MAPPING 체험

해와 달의 운행은 시간을 탄생시킨다. 전통시대 통치자는 하늘을 잘 관측하고 이를 토대로 정확한 시간을 예보했다.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 통치자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이 각종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조선후기에는 서양의 자명종이 들어와 거대한 물시계가 없어도 밤낮의 시간을 알 수가 있었다.
혼천시계는 1669년 조선시대 천문학자 송이영이 동양의 혼천의와 서양의 자명종을 결합시켜 만든 천문시계이다. 중국과학사의 대가인 영국의 조셉 니덤 교수는 “조선의 혼천시계는 동아시아 시계학사에서 획기적인 유물로 전세계에 널리 알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에필로그 : 38만km를 향한 첫걸음

인류에게 달은 과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달은 우리와 지구인 모두의 노래와 꿈이며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주 자연 중에서도 가까운 동반적 존재로서 오래전부터 신화와 전설 등 많은 이야기와 함께 있어왔다. 아주 옛날 동양인들은 달을 보며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는 토끼의 모습을 상상했고, 서양인들은 여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1609년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면서 달의 그림자는 토끼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분화구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한국에서도 18세기에 실학자 홍대용이 망원경으로 달의 월식 현상을 관찰했다. 달을 향한 시선이 바야흐로 신화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 문명의 발전은 누구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을 뒤집는 데서 출발했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실학자 홍대용의 무한우주론 등은 기존의 생각을 전환시킨 ‘뉴-페러다임(New Paradigm)’이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은 이러한 뉴-패러다임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닐 암스트롱

상상의 달은 이제 인류의 품으로 내려왔다.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달에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내뱉은 암스트롱의 유명한 말처럼 그의 작은 걸음이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었다. 암스트롱 이후로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계속됐다. 이제 인공위성으로 태양계를 탐사하거나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심지어 사람이 며칠씩 우주정거장에 머물며 생활하는 것도 가능해진 시대다.
달탐사를 비롯한 우주개발을 모든 나라들이 꿈꾸지만, 인공위성을 만들거나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 우주센터가 있는 나라는 손에 꼽힐 정도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이런 나라들 중 하나였다. 한국은 2013년 1월 30일 역사적인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사실상 11번째 우주강국이 되었다. 100㎏급 나로과학위성(STSAT-2C)을 우리 힘으로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나로호 개발사업이 10여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나로호는 300km를 날아 올랐다. 38만km를 향한 달 탐사의 첫걸음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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