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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만에코뮤지엄 <선감역사박물관> 개관
admin - 2017.01.24
조회 706

경기만에코뮤지엄 <선감역사박물관> 개관

△ 선감학원 역사와 유산을 활용한 선감역사박물관 조성

△ 안산시 선감도 해솔길 위에 문화예술을 입힌 선감이야기길과 함께 조성

△ 아픈 역사를 교훈의 장으로 활용하는 <다크투어리즘> 사례로 발전

선감학원의 숨겨진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선감도에 선감학원의 기억과 이야기를 담은 이야길과 박물관이 지난 1월 21일 개관했다. 경기창작센터(센터장 서정문)는 안산시 선감동 일원의 해솔 6길 구간을 일부 조정해 선감 선착장에서 경기창작센터에 이르는 약2km의 길을 ‘선감이야기길’로 조성하고 선감학원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과 이정표를 설치했다. 더불어 선감학원의 유물과 영상기록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선감역사박물관을 컨테이너 3개동의 건축물로 조성했다. 개관 기념전으로 선감학원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출신자의 이야기를 담은 ‘김춘근, 22년의 시간’도 6월 30일까지 열리고 당사자의 해설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경기창작센터 관계자는 “선감도에서 40여년간 존재했던 소년수용소 ‘선감학원’의 진실을 공유하고 반인권적인 상황에서 수용되었던 출신자들의 삶의 여정을 되짚어 그 아픔을 기억하고자 한다. 더불어 경기만 일대에 존재했던 현대사 한 페이지를 후대에 전해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 현장인 선감역사박물관과 선감이야기길을 에코뮤지엄으로 열고 보존하고자 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경기만에코뮤지엄 사업의 일환인 이 사업은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하고 있는 자우녕 작가와 봄날 예술인 협동조합(이사장 정기현) 등 예술인들과 선감학원 출신자들 그리고 안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선감도 주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경기창작센터는 앞으로 선감학원과 같은 아픈 역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이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 선감학원 역사 소개

○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감화원 시설로 조선총독부가 선감학원 운영에 필요한 보조 인원 15가구 70여명만을 남겨 놓고 선감도에 거주하던 주민 400여 명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선감학원을 설치했으며, 1942년 4월에 200명의 소년을 처음 수용하였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선감학원은 사회 반역아 등을 보호 육성하여 대동안 전쟁의 전사로 일사순국할 인적 자원을 늘리는 취지로 변모되어 인권유린과 혹독한 생활이 계속되었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하거나 구타로 인하여 또 영양실조 등으로 수많은 어린 소년들이 희생되었다.

○ 해방 이후 선감학원은 혼란을 틈타 국유지를 무단 점거한 주민들도 퇴거시키지도 못한 채 “사회와 격리시킨다”는 목표도 이루지 못한 채 일제강점기 때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군정에 이 섬이 주둔하면서 41동의 건물을 신축하고 1300만환의 원조금을 마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운영방법이 저열하여 원생들의 생활형태는 극히 열악하고 군대식 규율, 굶주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1960년대에도 부랑아 일제단속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였다. 이렇게 파행적으로 운행되던 선감학원은 1970년대 말까지 존속되다가 1982년 완전 폐쇄되었다.

○ 1960년대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던 원생들은 현재 환갑을 전후한 나이가 되었으며, 이들의 증언을 통해보면 탈출하다가 죽은 아동들은 선감도 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육지인 마산포에도 많이 매장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물재산(경기창작센터 맞은 편)에 아동들의 무덤이 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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